칸트의 『영구평화론』에서 유엔 창립까지: 철학이 국제질서를 만든 이야기
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‘평화’는 이상주의적인 꿈처럼 보이곤 합니다. 그러나 이 이상을 철학적 사유로 구체화하고, 그것을 제도적 현실로 발전시킨 사상가가 있었으니, 바로 독일 철학자 **임마누엘 칸트(Immanuel Kant)**입니다.
그의 저서 **『영구평화론』(Zum ewigen Frieden, 1795)**은 단순한 철학적 몽상이 아닌, 국제 질서를 위한 실천적 제안서였습니다.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된 핵심 아이디어들은 150여 년 후, **국제연합(UN)**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.
칸트의 『영구평화론』은 어떤 내용인가?
칸트는 당시 유럽의 전쟁 상태를 보며 "국가 간에도 윤리와 법이 적용될 수 있다"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칩니다. 그는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6가지 예비 조항과 3가지 결정 조항을 제시했습니다. 그중에서도 다음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:
- 공화정적 정치체제의 확산
- 국민의 동의 없이 전쟁을 하지 않는 정치체제가 평화의 조건이 된다.
- 국제법에 근거한 국가 연합
- 국가들은 완전한 통일국가가 아닌, 독립성을 보장하는 **“국제연맹”**을 구성해야 한다.
- 세계시민권 (Cosmopolitan Right)
- 모든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적대가 아닌 환영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.
칸트는 단지 전쟁을 방지하자는 수준을 넘어, 도덕과 법, 이성에 기반한 세계 질서를 제안했습니다.
유엔의 창설: 철학이 제도화된 순간
2차 세계대전의 참극 이후, 세계는 다시는 전쟁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. 1945년, 50개국이 모여 유엔 헌장을 채택하며 국제연합(UN)을 출범시킵니다. 이때 유엔 창설에 큰 영향을 준 사상적 배경 중 하나가 바로 **칸트의 『영구평화론』**입니다.
- 국제 연합이라는 형식: 칸트가 주장한 "국가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연합체"는 UN의 기본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.
- 국제법과 국제사법재판소: 칸트가 꿈꿨던 '국제법에 기초한 질서'는 현재 UN의 국제사법재판소(ICJ)와 인권위원회, 유엔 헌장 등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.
- 인도주의적 접근과 세계시민 개념: UN의 난민 보호, 개발 협력, 인권 활동 등은 세계시민법의 실천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.
이상에서 제도로: 사유가 만든 세계
칸트는 평화가 단순히 감정이나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, 이성과 도덕의 산물임을 강조했습니다. 그리고 그의 이상은 후대 국제법학자들, 정치사상가들, UN 창립을 이끈 지도자들의 실천 속에서 구체적인 제도로 태어났습니다.
- 칸트의 『영구평화론』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14개 조항과 **국제연맹(League of Nations)**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고,
- 국제연맹의 실패를 교훈 삼아 탄생한 유엔은, 칸트의 구상을 더욱 구체화한 현대적 결과물이 되었습니다.
평화는 사유에서 시작된다
오늘날 유엔의 실효성에 대해 비판도 많지만, 그 창립의 이상과 철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를 줍니다. 칸트의 사유는 ‘불가능해 보이는 이상’을 철학으로 다듬고, 후대가 제도로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.
전쟁과 분쟁이 계속되는 이 시대에도, 우리는 다시 칸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.
"평화는 자연스럽게 오지 않는다. 그것은 인간 이성이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이다."